❖ Promenade Original

특이점이 온다. 주도권은 있는가?

선배 산책자: 레이 커즈와일

⌘ 산책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산다.” 2045년,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레이 커즈와일의 예언은 이제 더 이상 공상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이번 산책에서는 다가올 변화가 드리울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바라보며, “특이점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새로운 불안의 이름인가?”라는 물음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특이점은 약속인가, 경고인가?

특이점이 온다, 레이커즈와일

 

●  산책로에 들어가며
 

특이점이란?

특이점은 원래 물리학과 수학의 용어다. 그러나 커즈와일은 기술의 궤적에 이 단어를 빌려왔다. 그에게 특이점이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려지고, 결국 융합하는 순간이다. 2045년이라는 특정 연도는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지수적 성장의 법칙에서 도출된 계산의 결과다.

 

2029년의 경고음

커즈와일은 2029년 범용 인공지능(AGI)이 등장할 것이라 말한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지능. 그 예측은 한때 ‘광인’의 언설로 취급되었지만, 오늘 우리는 챗봇과 생성형 AI 앞에서 더 이상 웃어넘기지 못한다. 2029년은, 단지 다가오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거울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불멸을 향한 욕망

커즈와일은 나노봇이 질병을 치유하고,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디지털 불멸을 가능케 할 것이라 믿는다. 그는 인간이 더 이상 죽음의 한계에 묶여 있지 않을 미래를 상상한다. 그러나 불멸은 축복일까? 아니면, 더 이상 ‘유한성’이라는 조건이 없어진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

◉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고릴라 문제: 또 다른 목소리

커즈와일의 시선이 낙관을 향한다면, UC 버클리의 스튜어트 러셀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만약 인간보다 더 지능이 뛰어난 존재가 태어난다면, 우리는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있을까?” 그는 고릴라와 인간의 비유를 끌어온다. 고릴라는 인간의 진화를 막을 수 없었듯, 인간 역시 더 뛰어난 지능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러셀의 질문은 낙관을 부정하기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불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다스의 함정

AI는 인간의 목표를 ‘정확히’ 수행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말한 대로 실행한다. 목표가 불명확하다면, 황금의 손길은 재앙이 된다. 이것이 가치 정렬(value alignment)의 문제다. 우리는 기술을 통제한다 믿지만, 실제로는 통제의 언어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기술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사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또 다른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탄소 배출이 지구를 위협한다면, 새로운 포집 장치가 이를 막을 수 있다고. 그는 낙관주의자다. 그러나 러셀은, 인간이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욕망을 AI에 투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두 목소리는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느 쪽의 배에 오를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 숨 고르기
 

인간의 정체성, 새로운 질문

특이점은 단순히 기계와 융합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다시 묻는 사건이다. 육체의 불멸, 혹은 디지털 불멸. 우리가 진정 지키고 싶은 것은 생물학적 생명인가, 아니면 기억과 이야기, 문화의 연속성인가?

 

불멸 대신 남기는 것

진화의 관점에서 개체의 불멸은 무의미하다. 유전자는 몸을 버리며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인간이 남겨야 할 것은, 어쩌면 육체가 아니라 이름, 기억, 사유일지 모른다. 불멸은 육체의 집착이 아니라, 전승의 방식 속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실현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산책을 마치며
 

특이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커즈와일은 2045년을 인류 문명의 전환점으로 지목한다. 러셀은 그 전환의 주도권을 인간이 쥐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불안정하고 가속화된 시대 한가운데에서 다시 묻는다. 특이점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사건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철학적 계기일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이미 현재를 구성한다. 불안과 기대, 가능성과 위기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기술이 우리를 규정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기술 속에서 다시 인간을 발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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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 레이커즈와일